"잠깐만요, 정말 할 겁니까?"
"당연하지. 이제 와서 내뺄 거야? 아줌마가 얼마나 공들여 준비했는데! 네가 눈 밑에 주먹만한 다크서클 매달고 돌아다니는 꼴을 그럼 보고 있으란 말야?"
누운 채로 차마 떨치고 일어나지도 못 하고, 버나비는 쿨쉭한 얼굴로 식은땀만 삐질삐질 흘렸다. 위에서 내려보며 헤죽헤죽 웃는 코테츠의 얼굴이 악마 같다. 더 끔찍한 건, 저 어딜 봐도 주책바가지에 자기 앞가림도 못 하면서 오지랖만 지랄같이 넓고 장난기는 또 열 살도 안 먹은 뒷골목 골목대장인 얼굴이 이뻐 죽겠다는 거다. 아니 이 아줌만 대체 뭘 먹고 이렇게 귀여운 거야! 절찬 첫사랑중인 이십대 총각의 머릿속은 참 부끄러울 정도로 핑크빛이었다.
"괜찮아 괜찮아~ 내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까 바니는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된다구~ 아무 것도 안 해도 돼~"
"......뭘 할 생각도 없어요..."
"처음부터 그럴 것이지. 부끄러운 건 한 순간이라구, 금방 기분 좋아진다구-"
"......누가 들으면 오해하기 딱 좋은 발언 하지 말아 주겠습니까?"
처음 만났을 때부터 일관적으로 사람 지치게 만드는 여자다. 다른 사람이 상대였다면 툭 털고 일어나 싫은 소리 한 번 해 주고 쫓아내겠지만 반한 게 죄라고 버나비는 도망도 못 가고 체념하고 눈을 감았다.
크림이 죽기 전에 남긴 말에, 이뤘다고 믿었던 복수가 사실은 헛발질이었다는 선언에 충격을 받고 두문불출하는 자신을 걱정해서 찾아온 사람이다. 차게 밀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. 게다가 반항해봤자 이 뻔뻔한 아줌마는 결국 다 자기 마음대로 밀어붙이고 말 것이다. 자신이 저항했다는 것을 충분히 어필했다면, 적당한 선에서 꺾여 주는 게 체력온존을 위한 길이다.
............무릎베개가 너무나 기분 좋아서 그러는 건 절대로 아니다. 절대로.
푸흐흐. 참으로 여자답지 못한 웃음소리와 함께 이마로 철퍽, 하고 차고 축축한 게 달라붙었다. 난생 처음 겪는 생소한 감촉을 이를 악물고 견디고 있는 동안 두 번째, 세 번째, 차례차례 같은 감촉이 얼굴을 메워 간다.
"어때, 바니쨩? 기분 좋아?"
"............먹을 걸 얼굴에 붙이고 기분 좋을 리가 없잖습니까."
얇게 썬 오이를 얼굴 가득 붙이고 버나비는 인상을 썼다. 아삭아삭, 붙이고 남은 오이를 먹는 게 분명한 소리가 들렸지만 차마 눈을 뜨고 핀잔을 줄 용기는 없다. 조금 전 코테츠가 거울을 챙기는 것을 곁눈질로 봤기 때문이다. 눈을 뜨면 분명 거울을 들이대고 오이가 치덕치덕한 얼굴을 강제로 보여 주며 놀리려 들리라.
"체. 그러게 누가 잠도 못 자고 얼굴 탱탱 부어선 늘어져 있으랬나."
"아줌마한테 신경 써달라고 한 적 없어요."
"와우. 어쩜 한참 반항기중인 우리 딸내미랑 하는 말이 똑같니?"
"...................."
"야, 야, 인상 쓰지 마. 효과 떨어져!"
미간을 꾹꾹 눌러 펴는 손가락이 사실은 무척 기분 좋았지만, 버나비는 입 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. 이 상황에서 솔직해지기엔 남자의 자존심이 너무나도 굳건했다.
"이 건 동양의 민간요법입니까?"
"응? 서양에서도 하지 않나? 기미나 다크서클엔 특효거든."
"그래요?"
"예전엔 자주 했었어. 어머니랑 나랑 어린 딸내미가 나란히 눕고 남편이 잔소리 하면서 처덕처덕-"
돌연 말이 끊겼다. 버나비 자신은 개의치 않았지만, 평소엔 적당적당한 성격인 주제에 쓸 데 없는 데서 이상하게 신경을 쓰는 그녀는 연하의 연인 앞에서 남편 이야기를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리라.
버나비는 눈을 감은 채로 더듬어 코테츠의 손을 잡았다. 여자답게 작고 섬세하게 생겼지만, 피부의 감촉은 거칠고 메마른 손. 이 손으로, 그녀는 자신이 한참 어리던 때부터 이 도시를, 그 안에서 사는 자신을 지켜왔다. 그렇게 생각하면 다른 여자와 다른 거친 살갗이 눈물이 나게 사랑스러웠다. 마침 잡힌 게 왼손이라, 손바닥에 닿은 반지가 그녀의 체온을 닮아 따뜻하다.
"돌아가고 싶어요?"
어디로, 언제로. 돌아가고 싶은 건지. 그 것까지는 차마 물을 수 없지만.
코테츠는 잡힌 손을 살짝 빼냈다. 갈 곳을 모르고 헤매는 버나비의 손을 반대로 감싸쥔다. 다른 손으로는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.
"이렇게 덩치만 커다란 애를 두고 내가 어딜 가겠니?"
악몽을 꾸고 달라붙는 어린애를 어르는 듯한 달콤한 목소리에, 버나비는 그만 애 취급 하지 말라는 항의를 삼키고 말았다.
19화 초반의 그 장면입니다.
그리고 그 날로 둘은 대판 싸우고 바니는 뺨 맞고 양부에게 이르러 가곸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
제목 짓기 귀찮아서 걍 넘버링.